심갑보 삼익LMS부회장(69)의 아바타는 청바지를 입은 멋진 신세대 청년이 자동차를 올라탄 모습이다. 사진취재 여행을 떠나고, 신세대못지 않게 감각적 내용의 메일을 보내길 즐기는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자신의 사진을 현장에서 뚝딱뚝딱 편집하고, 디지털 기기를 거침없이 다루는 그에게 “이 여러가지 일을 직접 하는가”하는 우문을 던지니 즉각 현답이 돌아온다. “중소기업 CEO는 만능맨이 되어야 합니다. 허드렛일부터 전문경영까지 모두 잘 할 줄 알아야지요.” 인터뷰는 중소기업형 인재와 대기업형 인재의 차이점 이야기로 자연스레 흘렀다. 대기업에 목매,재수도 불사하는 요즘의 세태에서 중소기업 CEO로서 그가 느끼는 바는 무엇이고, 중소기업형 인재와 대기업형 인재는 과연 어떤 점이 다를까.
#중소기업형 인재에게 요구되는 최우선요소는 커뮤니케이션
“대기업은 진취력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선호합니다. 여유인력이 충분한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훈련시킬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장래성보다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가 우선이지요. 그리고 원만한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기업은 브랜드 가치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시스템이라기보다는 맨투맨으로 결정되기 십상이니까요. 개인의 업무능력에 따라 그 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안되기도 하는 등 성사여부가 결정되므로 원활한 대인관계 능력이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지요.”
심부회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재수를 불사하면서까지 무조건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어디 가서 000회사 다닌다고 폼잡기 쉬울 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반드시 장래성이 있는 것은 아니란 지적이다.
“중소기업은 나름대로 처우 복지 교육기회등 몇가지 단점이 있지만, 자신의 능력과 함께 기업이 함께 클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요. 스스로 키우는 화초를 보는 재미라고나 할까요. 조직의 부품으로 일해야 하는 대기업에선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재미지요.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십시오. 대기업에선 동료끼리 경쟁이 치열하고, 생명도 짧습니다. 40대 중반까지 임원에 오르지 못하면 대개가 옷을 벗는게 현실아닙니까. 나중에 전문경영자나 창업을 꿈꾼다면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한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두루 여러분야를 거치는 멀티플레이어형 인재로 클 가능성이 훨씬 크니까요.”
그는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지름길엔 등산객이 밀리고 경쟁이 심한 법이지만 돌아가는 길은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덜 밀리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심부회장은 “경쟁에서 이길 것보다는 정상에 올라갈 것을 계획하고, 장기 계획을 세우면 세상에 분개할 것도, 스스로가 처질까봐 두려울 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뱃속에서부터 배워 나오는 사람은 없다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고 뭐고 기계를 뚝딱뚝딱 잘 만지고 현재 산업설비 자동화 부품을 생산하는 삼익 LMS에 근무하고 있지만 심부회장의 전공은 뜻밖에도 정치학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되면 전공을 탓하는데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대학이란 특별한 학식을 배우는 곳이란 의미보다는 공부할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을 잘 갈고 닦아 학습할 태도를 배워놓았다면 전공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요.”
심부회장의 20대때 꿈은 정치학자였다. 정치가를 꿈꿨다가 군대에서 정치학자로 궤도를 수정했다. 당시엔 정치가들의 부정부패로 군인들은 배를 곯아야 했는데 이런 정치현실에서 정치가를 한다는 것은 남을 등치지 않고서는 힘들겠다는 절망감이 들어서였다. 제대후 대학원에 진학, 학업에 매진하고 있던 중 부친이 돌아가셨고, 결국 가업을 잇기 위해 토목현장에 뛰어들었다. 또 토목에 손이 익자마자 현재의 삼익LMS로 옮기며 직장을 옮겨야 했다.
“뱃속에서부터 배워서 나온 사람 있습니까. 한번 덤벼들어보자는 오기로 못배울 것은 없습니다. 그같은 의지로 토목의 ‘ㅌ’자도 모르는 내가 1년만에 토목기사 자격증을 따냈고, 영 생뚱맞아보이는 기계조립도 끙끙대다보니 기술자만큼 해 낼 수 있었지요. 주어지는 과제가 크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내가 그 일을 해내는 만큼 나의 자격도 커진다고 바꿔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한결 신이 나고 일이 덜 힘들지요.”
심부회장은 “스스로에게 싸움거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의 사무실 액자에 걸린 격언대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몸소 체험해봤기 때문이다.
#자신의 좌표를 파악하라
심부회장은 영남대를 나왔다. 과연 그가 겪어온 시기는 옛날이라서 지방대 차별대우가 없었던 걸까.
“웬걸요. 지방대 차별,우리 때도 요즘 못지 않았습니다. 지방대생에겐 당시 최고직장으로 꼽히던 한국은행 원서를 아예 주지도 않았을 정도였지요.”
심부회장은 차별대우를 하는 주위여건을 무조건 탓하며 비관하기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한다. 목적지 못지 않게 현실인식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일단 명문대 출신은 숱한 경쟁을 통과하며 이긴 승리자입니다. 그들과 같은 물에서 놀며 이기려고 들면 힘들 수밖에요. 물론 인생의 패자에 안주하란 뜻은 아닙니다. 장기전에 임하란 뜻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회사에서 차근차근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도 인생의 성공적 전략이지요. 빨리 가는 것보다 쉼없이 꾸준히 제대로 간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생각하면 초조할 것도, 비관할 것도 적어집니다.”
#세상을 교실로 삼아라
심부회장은 재계에서 세미나 개근상 CEO로 알려져 있다. 집무실에는 그간 그가 들은 강연비디오 테이프를 차곡차곡 모아놓은 것들이 방송국 자료실을 방불케 할 정도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라며 오늘 이날까지 한번도 공부를 쉰 적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30여년간 세미나에 4천여차례 각종 강연회와 세미나를 다니며 녹취한 테이프들입니다. 한해에 120번, 사흘에 한번꼴씩 세미나에 출석한 셈이지요. 작은 휴대형 녹음기가 없어 커다란 녹음기를 메고 다녀야 하던 그 시절, 버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그 테이프로 수차례씩 복습을 하며 여러 유명강사분들의 강의를 내 몸에 뼈와 살이 되도록 익혔지요.
전직 대통령들의 재야시절 강의에서부터 재벌 총수의 강의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 분야에서 뛰어난 분이라면 어디고 달려가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것을 디지털화,내 홈페이지에 올리기 위해 또 컴퓨터공부를 하고 있지요.”
심회장은 “젊은 나이에 경영을 떠맡아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게 세미나였지만, 지금은 나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키는 도약대가 되고 있다”며 “사람이나 컴퓨터나 매년 혁신하지 않으면 고물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늘 새로운 이론과 학설을 들으면,그것을 지금의 시점에 맞춰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심하십시오. 우리 회사가 70년대 영세 공구업체에서 오늘날의 첨단 자동화부품 업체로 변신한 것도 세미나 덕택이지요. 어디를 가든 교육내용은 물론이고 책상배치도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그것을 나의 현실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십시오.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세상을 교실로 삼으면 절로 성공은 손에 잡히게 돼있습니다.”
■심갑보 부회장 프로필
1936년생. 삼익 LMS 대표이사 부회장.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국무총리 정책평가위원회 위원등을 역임. 영남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 경영대학원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등을 마쳤다.
정치가 지망생이었으나 사업가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설업에 종사하다, 이후 장인의 회사인 산업용 줄 업체인 삼익LMS로 옮겼다.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업종으로 옮겨서도 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끊임없는 학구열이었다.
30여년간 4천회 이상 세미나에 참석, ‘공부하는 CEO’가 그의 별명이다. 뱃속에서부터 배워 나온 사람은 없다는 모토하에 그가 탐구욕을 가지고 도전해온 분야는 디지털 카메라사용법등 실용분야에서부터 최신 경영이론까지 다양하다.
김성회기자/sa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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