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
사무국
|
조---회 : |
7558 |
|
글쓴날짜 : 2004-10-22 |
"핸드볼 중흥의 시급한 과제는 실업팀 창단"
"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팀의 선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핸드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습니다.
이 열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많은 애정과 성원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감동의 은메달드라마를 연출한 자랑스러운 여자핸드볼팀.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묵묵히 선수들의 뒷바라지와 한국 핸드볼 중흥을 위해 대한핸드볼협회를 이끌어오고 있는 李萬錫회장(67.정외, 삼창화섬(주) 대표이사)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은 아테네올림픽 최대의 명승부이자 2시간여 숨막히는 경기를 지켜본 국민들에게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금메달을 따지못한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있다.
여자핸드볼은 올림픽만 열리면 '효녀'종목으로 이름을 날렸다.
88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해 올림픽에서만도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를 획득했다.
이만석회장은 지난 2001년부터 3년째 대한 핸드볼 협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취임전인 98년부터는 한국실업핸드볼연맹 회장으로 활약했다.
협회 회장에 취임한 이회장은 꿈나무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핸드볼 꿈나무 육성캠프에 정성을 쏟았다. 이 꿈나무 캠프에는 매년 전국 초등학교 핸드볼선수 5~6백여명이 참가하여 4박5일간 행사를 가진다.
핸드볼은 타 종목에 비해 저변인구가 빈약하다. 키가 좀 크다 싶으면 농구나 배구,야구선수로 스카웃되고 그 나머지 중에서 선수를 고른단다.
그것만이 아니다. 중.고, 대학으로 갈수록 팀의 숫자가 줄어들고 특히 실업팀은 남자 4개 팀과 여자 5개팀 뿐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실업팀 60~70여개, 덴마크는 실업팀이 3천여개가 넘는다. 팀 숫자로 비교해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또한 비인기종목이다 보니 언론의 스포트도 받지 못한다. 각종 스포츠지는 인기종목인 프로야구와 축구 일색이다. 핸드볼의 기사가 스포츠지 1면을 차지한 적이 한번도 없단다. 선수 1~2명이 부각되면 팀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할 뿐만 아니라 핸드볼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도 그만큼 달라진다는 것이 이회장의 견해다.
특히 현역에서 은퇴 후 아무런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 이회장은 이것이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단다. 은퇴한 선수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 체육회 회장을 만나 축구 1년 예산의 1/1000만 지원 받아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오겠다고 했단다. 어느 정도의 지원만 있으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핸드볼의 현주소이다.
핸드볼 명문이었던 대구 대륜고 출신인 이회장은 핸드볼에 대한 재미와 매력을 느껴 언젠가는 핸드볼팀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단다.
하지만 이회장의 생각이 이젠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 핸드볼의 중흥과 발전을 위해 자신이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열악한 한국 핸드볼의 기반을 다져야 하는 책임감을 그만큼 통감하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선수들에게 한가지 일에 혼신의 힘을 쏟으면 신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단다. 남들이 다하는 일반적인 노력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계정상을 지키고 도전하기 위해서는 혼이 담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대론 지탄을 받을지라도 이회장에게는 한가지 뜻이 있다.
그것은 국민들이 핸드볼을 잊고 있다가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때 핸드볼 경기를 보면서 국민들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것 때문이다.
1~2시간의 경기를 보면서 즐거워하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는 국민들을 위해 3~4년을 투자한다는 것은 핸드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9월 17일에는 롯데호텔에서 은메달포상식을 겸한 팬사인회와 남녀핸드볼 선수단 환영행사도 가졌다는 이회장은 핸드볼의 열기를 이어가고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덴마크 대표팀과의 정기교류전도 추진하겠단다.
또한 올림픽 후 (주)효명종합건설의 여자핸드볼팀 창단을 시작으로 대기업을 찾아가 핸드볼팀 창단권유를 위한 노력을 펼쳐 몇몇 기업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이회장은 실업팀 창단이 핸드볼 중흥의 가장 시급한 과제란다.
이회장은 천안에 생산공장과 서울에 회사를 두고 있는 섬유회사 삼창화섬(주)을 경영하고 있다. 생산품의 대부분을 미국, 유럽, 일본에 수출하고 있으며, 섬유와 인연을 맺은 지도 30여년 세월이다.
이회장은 한가지 일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후회 없이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다. 또한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한 보람을 찾고 있다.
이회장은 테니스 애호가이다. 30여년간 비오는 날을 제외하곤 아침마다 1시간씩 테니스를 즐겨왔다.
재경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한 이회장은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동아시아핸드볼연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생명나눔 실천본부 후원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에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과 한국 핸드볼 발전을 위해 세계핸드볼협회 회장을 맡아보는 것이 이회장의 꿈이다.
1947년 경북 성주출신으로 부인 유성자여사와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申在七 편집부장)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