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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돈 한국파마 대표이사  
--- 사무국 --- 7503
글쓴날짜 : 2004-10-21
"약사로서 가고자 하는 길, 해보고 싶은 것을 다해 보았다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약업계에 몸담은 지 50여년. 제약업에 뒤어든 지 30년. '盡人事待天命'을 가슴에 새기며 최선을 다해 제약업 외길인생을 달려온 박재돈 동문(55. 약학, (주)한국파마 대표이사).

박대표는 이 외길을 걸어오는 동안 많은 분들의 사랑과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파마가 있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파마의 30년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주)한국파마가 9월 3일 창사 30주년을 맞이했다. 박대표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공대진학을 꿈꾸었던 박대표는 "약사면허증 하나만 있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공대를 갈려고 하느냐"는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지난 55년 대구. 경북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영남대학교 전신인 舊대구대학 약학과 1회로 입학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약대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제약회사 취직은 하늘의 별다기. 약국에 취직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지인의 도움으로 약국에서 6개월간 약에 대한 기초를 배웠다.
그리고 제약회사에 취직하여 부산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이때 부산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이화여대 약대출신인 이귀자여사를 만나 63년 결혼했다.

이후 부인의 '남산약국'개국, 그리고 영업사원과 약도매상을 겸업하다가 부인과 함께 약국에 전념하여 부산에서 소문이 날 정도의 대형약국으로 성장시켰다.
박대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약도매상, 약국경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74년 9월 부산의 '민생제약'을 인수하여 제약업에 뛰어들었다. 75년에는 한국파마로 상호를 변경했다.
"제약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즘 빌딩 몇 개는 소유하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박대표. 제약회사 창업이 고난과 역경의 길이 될 줄은 박대표도 몰랐던 것이다.

85년 정부의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가 강화되면서 첫 번째 시련이 닥쳐왔다. 공장 설비. 품질관리 등 부산지역 제조업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제약회사를 그만 둘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단다.
하지만 박대표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 이전을 결심하며 새로운 도전의 길을 선택했다.
사업터전이었던 부산생활을 마감하고 91년 경기도 화성 향남제약단지로 한국파마를 이전했다. 4~5여년간 서울의 문화에 적응하고 터전을 잡는가 싶더니 IMF와 의약분업이 연이어 닥쳐왔다.

IMF로 거래하던 약도매상 대부분이 도산으로 문을 닫았고, 설상가상으로 의약분업은 약국 위주의 영업망을 갖춘 한국파마로서는 회사 존폐의 위기였다.
그러나 박대표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盡人事待天命'을 가슴에 새기고 최선을 다했다. 물론 주위 분들의 도움과 성원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전문의약품을 개발하고 영업망을 새로 구축하는데 적지 않는 세월이 흘렀다.

한국파마가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라가자 박대표는 감마선으로 농산물을 멸균하고 장기 보존처리하는 방사선 멸균사업인 (주)소야를 99년에 설립했다.
(주)한국파마는 서울에 본사를, 경기도 화성시 향남제약공단에 공장을, 부산.대구 등 전국에 9개의 영업소를 두고 있으며 전문의약품을 생산 해 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동남아와 중남미 등 세계 2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2000년에는 1만불 수출탑도 수상했다.
현재 220개의 GMP 기업 중 60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박대표는 약사출신 제약회사 대표 12명으로 구성된 '약경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부 서울의 명문대학출신이다. 박대표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데 영남대 약대 출신으로 뿌듯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고비때마다 주위분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박대표는 우리 선배님이 무너지면 안 된다. 영남대 약대출신도 제약회사다운 회사가 있어야 한다며, 결정적인 순간 순간마다 약대 후배들의 도움과 성원은 결코 잊을 수 없다며, 어느 대학 약대출신 못지 않는 중견 제약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에 가득차 있다.

지금까지는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모교 약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박대표는 약대발전기금 1천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누구보다도 기여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단다. 약대 1회 출신으로 모교에 대한 명예와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7시 30분이면 어감없이 회사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하는 철저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박대표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더욱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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