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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짜 : 2004-07-21 |
[혼을 담아 나를 판다]<7> 코오롱인터내셔널 정 영 훈 테헤란지사장
*이력서 출생 : 1963년 8월 경남 합천
최종학력 : 영남대 무역학과 졸업
최초입사: 1987년 11월 코오롱상사
현 직위: 코오롱인터내셔널 테헤란지사장
취미: 운동(중학교 시절 유도선수로 활약)
페르시아商人도 놀란 `商術 달인`---이란에 `나홀로 부임` 2년만에 수출6배-수익4배>>>성실ㆍ신의ㆍ친화력 무기…두바이 상권까지 넘봐
기업에 중동은 더 이상 70, 80년대처럼 `기회의 땅`만은 아니다. 외국 민간인에 대한 이라크 무장단체의 무차별 납치소식이 시시각각 들려오는 요즘, 기업 입장에서는 불모지를 개척해 회사에 또 하나의 유망시장을 안기겠다는 직원들의 애사심을 기대하기란 사치가 돼 버렸다.
코오롱인터내셔널의 정영훈(41) 테헤란지사장(부장)은 최근 2박3일간의 짧은 한국 일정을 마치고 중동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다정한 이웃(?)으로 둔` 이란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잠시 한국을 찾은 이유는 `코오롱 최우수 사원상`을 받기 위해서다. 이 상은 지난 4년 동안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하다가 마침내 올해는 이란 수출의 첨병으로 맹활약 중인 정영훈 부장의 품에 안겼다.
큰상을 받은 것에 대해 "쑥스럽다"며 말문을 연 정 부장은 "막상 상을 타고 보니 상의 가치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나칠 정도로 겸손했지만 사실 정 부장은 테헤란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란 영업에 있어 `신화`를 만들었다. 지난 2001년 1000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실적을 불과 2년 만인 2003년에는 6000만달러까지 끌어올려 이란 내 한국 상사 중 최고의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수익도 4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코오롱그룹의 경우 국내 다른 그룹과는 달리 타이어코드 외 몇몇 제품을 제외하고는 국제무역에서 거래되는 품목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과다.
더군다나 코오롱인터내셔널 테헤란지점은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해야 하는 1인 지사다.
정 부장이 이란 테헤란지점에 나홀로 지사장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 1998년. "어릴 적부터 007가방을 들고 해외출장 가는 게 꿈이었다"는 정 부장은 입사 초기부터 중개무역영업, 직수출영업, 싱가포르지사 등 다양한 업무와 지역을 거쳐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98년 당시 테헤란지점 1인 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 부임 당시 테헤란지점은 매출액 600만달러에 `과연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설 정도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2001년은 정 부장에게 가장 힘들었던 한 해로 기억된다. 한국 내 코오롱공장 화재로 안정세를 유지하던 타이어코드 공급이 어려워졌고 급기야 이란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2002년 4월까지 사무실 출입문 봉쇄 및 출국금지조치 등 갖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에 정 부장은 타이어코드 비중을 점차 줄이고 스테인리스스틸을 비롯해 특수철강, 파이프용 특수플라스틱 등을 새로운 주력품목으로 바꿔나갔다.
그러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초 이란 국영통신회사에 통신케이블과 케이블자재 등을 공급하는 대규모 계약건을 성사시켰다. 단일 계약으로는 최대 규모인 4000만달러짜리였다.
"1000만달러짜리 신용장 4장을 받아든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장사꾼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라고나 할까요?" `달나라에 가도 물건 팔며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친화력과 적응능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내외 평가를 받고 있는 정 부장이지만 당시 마땅한 영업지침서조차 없었던 중동 지역을 개척하기란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란 상인들은 깐깐하기로 소문난 세계 3대 상인의 피가 흐르는 페르시아 상인의 후예들이 아닌가.
올해 매출목표를 1억달러로 잡은 그는 "국적과 문화, 인종, 종교를 떠나서 비즈니스의 왕도는 신의와 성실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에게 이란과 중동은 이젠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일년 내내 비를 찾아보기 힘든 이란에서 기상이변으로 비가 내리면 `날씨 왜 이래`라며 짜증 낼 정도로 이란인이 다 됐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외국 민간인에 대한 납치가 일상화된 현 중동의 불안한 상황에 겁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란에 끝까지 남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정 부장은 이웅열 그룹회장으로부터 최우수 사원상을 수상하면서 또 하나의 과제를 덤으로 받았다. 새로운 국제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두바이 상권을 개척해 보라는 것. 금융 정보 통신 국제회의 관광 등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국제도시를 꿈꾸는 두바이에는 이미 아프가니스탄, 독립국가연합(CIS), 모로코, 수단, 리비아, 이란 등 전 세계 상인들이 모여있다. 그곳에서 정 부장은 이란에서처럼 1인 개척자가 돼야 한다.
"이란과 두바이를 오가면서 향후 5년 이상은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바빠지겠죠. 하지만 이란에서 했던 것처럼, 사람에 대한 끈기와 신뢰를 지킨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헤럴드경제 2004-07-20] 곽세연 기자(ksyeon@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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